원문링크: http://www.seedbed.com/can-work-always-be-spiritualized-worship/

 

Our Work is a Form of Worship

이 연재에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가정 할 위험이있는 4 가지 부적절한 자세를 탐구했습니다. 이 마지막 글에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생각하는 직업, 즉 예배로서의 일을 충실하게 표현하고자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공동의 창조 (Co-Creation), 촉매 (Catalyst), 공헌 (Contribution), 공동체 (Community) 등 4 가지 사역을 예배로 간주합니다. 차례 차례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동 창조 (Co-Creation)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본질을 이해해야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본성은 생산적인 활동 가운데 찾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은 본인의 창조세계에 깊이 관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계와 창조의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적인 활동에 참여함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우리 일의 활동이 단순한 노동 (생산물 산출)의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롭게 이해해야 할 노동의 본질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바로 우리의 일에는 우리가 깨달아야할 새로운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말씀하신것 처럼 우리의 일을 통하여 비춰지는 선함과, 성취, 그리고 탁월함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분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구현하는 것과 연관 되어 있습니다.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목적이 선한 일을 위해 창조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공동 창조자 (Co-Creation)가 되는 것 외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활용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 (John Wesley)가 “석탄을 불꽃으로 날려 버리는 것”이라 말한것 처럼,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은사는 멈춰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우리는 우리의 은사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은사의 촉매 (Catalyst)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의 은사를 충실하게 보전하거나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은사는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은사의 목적, 즉  텔로스 (telos: 역자주 – 궁극적 목적), 은 남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이는 베드로전서 4장 10절의 말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과 부합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과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며 모든 축복과 은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분리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의 공동 창조 (Co-Creation)와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사를 촉진하도록 촉매제 (Catalyst)가 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임을 깨닫는 동시에 우리는 일의 본질적인 기능을 등한시 해서는 안됩니다. 일은 생산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일의 목적은 단순한 존재 (Being)를 넘어서서 행하는 (doing)것에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일을 통하여 공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업무 활동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며, 보편적인 문제인 희소성에 대해 자각하게 합니다. 희소성 (Scarcity) 혹은 자원제한의 법칙은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합니다. 정의와 균등분배에 대한 문제 (누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 생산의 결정권 (누구에게 우리의 자원을 나눌 것인가?), 그리고 사회적 병폐 (갈등, 빈곤, 부패, 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폐단을 적시합니다.

희소성의 법칙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소성이 야기하는 문제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요소는 바로 성장에 있습니다. 즉, 우리의 업무 활동에서 발생하는 생산성, 그리고 그로 인한 성장과 발전이, 희소성의 위협을 막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원의 제한으로 야기되는 희소성의 법칙을 직면할 때, 더 많은 생산의 증대가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14장 4절에서는 이 법칙을 이와 같이 표현합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즉, 우리가 일을 할때 우리는 생산을 통하여 우리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소가 없으면 농작물이 없다. 행하지 않으면 결과물도 없는 것이다.”

생산성 증대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기시는 분이 계시다면, 생산 증대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기 위해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희소성이 한정된 자원의 문제라면, 풍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충분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즉, 내가 나의 욕구를 조절 할 수 있는 단계가 된다면 희소성의 문제는 덜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는 물직적인 발전이 도덕적 발달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우리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인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산의 증대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사역으로 사용 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보호하는 일, 자녀에게 나눔을 가르키는 일, 가난한 자와 노인들을 돕는 일, 제 3 세계 마을에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는 정수기를 설치하는 일과 같이 생산을 증대하는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 희소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해 사용 되는 일을 재 정의 하며, 이와 같은 일을 예배로 정립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일을 통하여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 (교회와 사회의 공동체)를 세워가게 되며, 이는 명백한 예배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본성은 관계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돌보실 뿐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안에는 관계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우리가 관계와 창조의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우리도 공동체 안에서 일하고 관계할 때에 관계의 본성의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웨슬리의 말을 인용하자면, 공동체 안에서의 일은 우리 자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라 합니다. 웨슬리는 인간이 “관계안에서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직장에서도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직장 동료와 함께 일하면서 세워져 가는 관계,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선한 목적을 향하여 공통된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같은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포함하는 것이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안에서 함께 관계하며, 우리의 일의 목적을 추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관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이 연재글을 통하여 일과 예배가 나뉘어 져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역설하고자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은 에배의 한 형태임을 나누려 하였습니다. 야고보서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신앙이 행하는 신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예배의 한 형태로서 우리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 하나님의 창조성에 참여하며,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하며, 생산을 증대하며 세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직장 공동체 정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우리의 역할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시도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자: Kevin Brown and Mike Wiese

번역 : 전승수

전승수 목사는 현재 Asbury Theological Seminary Th.M in Intercultural Studies 에 재학중이며, 미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입니다. 2015년 부터 Raleigh Court Untied Methodist Church 의 담임목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목회자료들을 번역하기 위해 다리Builders를 시작하였습니다. 'Bridge Builders' 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키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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