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링크:http://www.seedbed.com/work-and-worship-are-not-two-different-things/>

이 글은 5회 연재글입니다.
매주 1개의 글이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연재①: 복싱을 통해 배울수 있는 일터지혜]로 바로가기

이전의 글을 통하여 저는 사람에 두 마음을 품는 일이란 지극히 당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 현상의 연장선상안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신앙과 직업과, 즉 일터의 삶을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터를 통하여 신앙의 빛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신앙과 일터를 갈라 놓는 관점이 무엇인지 조명해 보아야 할 것 입니다.

관점 1. Work, not Worship Divide (일과 예배의 분리)

신앙관과 직업관의 관계를 표현한 잘못된 첫번째 관점은 일터와 예배를 분리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이 관점은 일과 신앙이 우리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지만, 둘 가운데는 아무런 교차점이 없음을 이야기 합니다. 이는 주일에 예배 드릴때의 자세와 월요일 아침에 일터로 출근할때, 서로 다른 자세를 가지고 사는 신앙인의 삶을 표현합니다.

“죄악된 세상 가운에 한주간을 보내고 , 이 자리에 예배하러 오신 여러분…” 우리가 예배할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 이런 관점을 가진 신앙인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세상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와 같은 이중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일과 예배를 분리하는 관점 (Work, not Worship Divide)은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일터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두명의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인간, 즉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편리에 의하여 신앙인으로 혹은 직장인으로 바꿔가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형성하는 믿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행위 또는 종교생활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관점이 우리의 생활 가운데 깊숙히 스며들어 왔음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발결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예배 (worship)의 정의를 생각해 보세요. 예배가 가진 수많은 의미가 있지만, 우리는 성도가 교회모여 악기 연주에 맞추어 박수 치고, 손을 들며 찬양하는 20-30분의 시간으로 국한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예를 들면, 찬양 전, “여러분, 우리 함께 예배합시다” 라는 인사가 이를 대변하고 있지는 않나요?
만약에 성도가 함께 찬양하는 이 행위를 예배로 제한한다면, 교회 안에서 드려지는 이 시간을 제외한 우리의 일주일은 예배가 아닌 다른 ‘일’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을 형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또 반대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일은 일일 뿐 (business is business)’ 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부적절한 방법으로 일을 추진 하면서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Bad Religion” (나쁜 종교) 라는 책의 저자인 Ross Douthat 는 책속에 나오는 기독교 사업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천연가스 기업의 CEO는 공식적으로 기업의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세계에 믿을 수 있고 혁신적인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기업.’
하지만 이 CEO의 철학에는 신앙에 근거한 관점이 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이와 같은 영향으로 저는 법을 준수하고 도의적인 방법으로 기업을 이끌고, 어떻게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저의 강한 소신이지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지성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outhat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 천연가스 회사가 엔론 (Enron – 역자주: 회계분식으로 미국경제 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영향을 준 엔론사태) 이며, 이 크리스천 CEO가 Kenneth Lay라고 밝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 세계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원을 공급하겠다는 Lay의 철학이 뭐가 잘못 된건가요?’ 맞습니다. 신앙에 근거하여 선행을 하기 위해 수립된 이와 같은 비전을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엔론사태를 통하여 드러난 Lay와 그의 경영철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인생의 교훈이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터와 신앙관을 분리 할때 너무나 자주 우리의 신앙이 일의 의하여 무참하게 사그러드는 것을 경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Douthat는 이와 같은 현상을 “하나님과 맘몸 (Mammon)을 함께 섬길 때 나타나는 현상” 이라 지칭하며, “이는 부정으로 재물이 모아지는 현상을 간과하며, 돈이 사람의 마음을 점진적으로 지배해 간다는 속성을 무시할 결과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Work, not Worship Divide (일과 예배의 분리)의 경과는 아주 명료합니다. 나는 일할 때와 일터 밖에서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으로 사는 이중적인 삶을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한 분리가 아닙니다. 그 뿐 아니라 일터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그리스도의인 삶에 부정적인 역할을 끼치게 된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번역 : 전승수

전승수 목사는 현재 Asbury Theological Seminary Th.M in Intercultural Studies 에 재학중이며, 미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입니다. 2015년 부터 Raleigh Court Untied Methodist Church 의 담임목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목회자료들을 번역하기 위해 다리Builders를 시작하였습니다. 'Bridge Builders' 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키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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