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5회 연재글입니다.
매주 1개의 글이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연재①: 복싱을 통해 배울수 있는 일터지혜]로 바로가기

[연재②: 일터의 예배] 관점 1: 일터와 예배의 분리

[연재 ③ 일터의 예배] 관점 2: 일, 그 후에 예배 분리

[기획연재 ④ 일터의 예배] 일과 사역 중

 

Can Work Always Be Spiritualized Worship?

오늘 우리는 일터와 사역의 분리를 설명하는 마지막 관점으로 일터와 예배의 적당하지 못한 혼합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 두개의 관계 안에서 우리의 일터에서의 정체성과 신앙의 정체성이 순수하게 혼합될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세는 언뜻 보기엔 큰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자신의 직장생활에 과도한 영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과도한 영적의미 부여는 오히려 우리의 믿음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일에 영적인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이들 가운데 일상에서 반복되는 업무의 결과가 관례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잘못 해석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일상 업무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까지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다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이 과도하게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믿을 때는 오히려 우리의 신앙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가, 특정 방향을 하나님의 뜻이라 규정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는 동료를 직장동료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의 주관자인 하나님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몰아갈 수 있는 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일터와 예배의 혼합은 일상적 잡무를 영적이지 않은 일로 규정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초월하고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는 신앙 간증들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와 같은 기적적인 순간들을 두고 우리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예수님의 산 정상의 경험 (Mountain-top Experience)이라 가르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우리들의 삶에서 기적적으로 나타난 간증들이 우리 안에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우리의 일상은 산정상의 순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하신 후, 이 순간에 감격한 나머지 베드로는 ‘여기가 좋사오니,’ 이곳에 초막을 짓자고 제안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산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마태복음 17장 9절)

이 성경말씀은 일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요?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산정상에서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기적을 맛보고 싶어하지만, 실상 우리의 삶은 산아래 계곡에 더 밀접함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 자료 입력, 밭에 거름 주는 일, 아이 교육, 소프트웨어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우리의 삶은 산 정상에서 일어나는 기적이라고 말하기 보다  현실의 소용돌이 안에 흐르는 계곡에 비유 되곤 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인데, 우리는 일상에서의 단조로움, 혹은 어려움으로 인해 산정상에서의 기적을 맛보며 살지 못함에 실망 할 수도 있습니다.

매일의 일상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할때 우리의 신앙은 자칫 감정에 치우치거나, 기적에 목말라하는 감정적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 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계곡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할때 우리는 자칫 일상의 일터를 떠나는 오류를 범하거나, 심지어 신앙을 떠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터와 예배의 혼합은 우리를 탈진의 상태로 몰아 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자신의 일터안에서의 성공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데, 거기에 더하여 개인의 신앙, 교회안에서의 생활,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안에서 역할까지 감당하기 위한 에너지를 두곳에 동일하게 붓는다면 언젠가는 탈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학 이론의 기초는 단순명료한 법칙으로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정의 법칙 (Scarcity). 한정의 법칙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몸과 정신의 에너지가 무한하다 착각하며, 에너지 부족으로 인하여 쓰러질때 이와 같은 일과 예배의 혼합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실망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일과 예배가 부자연스럽게 혼합될 때 우리는 두개의 영역에 동일한 가치를 두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에는 일의 영역과 예배의 영역이 공존하지만, 일의 영역이 결코 예배의 영역과 동일시 될 수는 없습니다. 예배는 다른 삶의 영역과 경쟁의 상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예배 자체가 모든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편에서, 예배의 영역안에서 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저자: Kevin Brown and Mike Wiese

(다음 편에서 계속…)

번역 : 전승수

전승수 목사는 현재 Asbury Theological Seminary Th.M in Intercultural Studies 에 재학중이며, 미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입니다. 2015년 부터 Raleigh Court Untied Methodist Church 의 담임목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목회자료들을 번역하기 위해 다리Builders를 시작하였습니다. 'Bridge Builders' 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키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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